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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드라마 ‘미지의 서울’은 박보영이 1인 2역으로 쌍둥이 자매를 연기하며 큰 주목을 받은 작품입니다. 단순히 외형이 닮은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정서와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들의 내면을 밀도 있게 표현하며 캐릭터 중심 드라마로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이번 글에서는 박보영이 맡은 ‘서하’와 ‘지하’ 두 캐릭터의 심리묘사와 서사적 역할,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드라마 전개의 중심축이 되는지를 심층적으로 리뷰합니다.
외형보다 내면이 다른 쌍둥이 자매 (쌍둥이 자매)
‘미지의 서울’은 쌍둥이라는 설정을 단순한 설정 이상의 심리적, 사회적 대비 장치로 활용합니다. 박보영이 연기한 서하와 지하는 외형은 닮았지만, 자라온 환경과 사회적 위치, 성격과 가치관에서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서하는 서울에서 자라 성공한 커리어우먼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효율성과 통제력을 중요시하는 이성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지하는 도시 외곽의 작은 마을에서 예술가로 성장했으며, 감정에 충실하고 인간 관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성 중심의 인물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성격의 대조가 아니라, 현대 사회가 청년들에게 요구하는 두 가지 삶의 방향성—성과 중심적 생존과 자기표현 중심의 삶—을 대표하는 장치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두 인물은 서로의 삶을 엿보며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에 대한 호기심과 혼란, 그리고 점차 이해와 존중으로 나아가는 복잡한 심리 여정을 겪습니다. 특히 쌍둥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설정—서로를 대신하거나,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살아보는 실험—은 현실에서 불가능에 가까운 환상을 서사의 도구로 활용하면서도, 그 안에 있는 인간의 본질적 욕망과 두려움을 드러냅니다. 이 점에서 ‘미지의 서울’은 단순한 이중 역할 드라마를 넘어,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탐색으로까지 확장됩니다.
박보영의 연기로 완성된 인물 구분 (박보영)
1인 2역이라는 기술적 도전 속에서도 박보영은 두 인물을 완전히 다르게 느끼도록 만드는 연기의 힘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단지 말투나 외형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시선 처리, 숨소리, 말의 간격, 감정의 속도까지 디테일하게 조절함으로써 시청자에게 두 인물이 다른 인격체로 받아들여지게 합니다. 예를 들어, 서하는 타인과의 대화에서 정면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고, 눈을 잘 마주치지 않습니다. 이는 그녀가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려는 성향을 내포합니다. 반면 지하는 대화를 할 때 손을 많이 쓰고, 감정에 따라 목소리의 높낮이가 뚜렷하게 변하며, 공감의 제스처가 많습니다. 이처럼 캐릭터의 심리와 태도를 행동과 미묘한 신체 언어로 전달하는 방식은, 박보영이라는 배우의 세밀한 인물 구축 능력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또한 그녀는 극 중 감정이 격해지는 장면에서도 절제된 표현과 강렬한 감정 전달 사이에서 정확한 균형을 유지하며, 극의 진정성과 몰입도를 높입니다. 특히 중요한 장면 중 하나는 서하와 지하가 자신이 살지 않은 상대의 삶을 마주하고, 혼란과 부러움, 죄책감을 동시에 느끼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서 박보영은 자신 안의 두 자아가 대립하고 있는 듯한 연기를 펼쳐, 한 배우가 두 인물을 연기한다는 사실을 잊게 만듭니다. 이는 단순한 캐릭터 분리 이상의 심리 내적 연기의 결정체라 할 수 있습니다.
캐릭터를 감싸는 심리 연출의 정밀도 (심리묘사)
‘미지의 서울’은 단순히 배우의 연기에 의존하지 않고, 연출과 극본 차원에서도 심리묘사를 중심으로 드라마를 설계했습니다. 이를 통해 두 캐릭터의 내면 변화는 말로 설명되지 않아도, 화면 구성, 조명, 음악, 편집 리듬 등을 통해 관객에게 체감적으로 전달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각 인물이 등장하는 공간의 분위기입니다. 서하의 공간은 정돈되고 차가운 색감의 인테리어로 구성되어 있으며, 클로즈업보다 정적이고 멀리 떨어진 카메라 앵글을 사용합니다. 반면 지하의 공간은 따뜻한 조명, 흐트러진 책과 오브제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물의 감정을 따라 움직이는 핸드헬드 카메라와 다채로운 앵글이 자주 등장합니다. 음향적으로도 서하의 장면에는 잔잔하거나 공백이 많은 사운드가 사용되어, 감정이 내부로 침잠되는 인상을 줍니다. 반면 지하의 장면에는 외부 소음과 배경음악이 비교적 적극적으로 사용되며, 감정의 분출이 강조됩니다. 이러한 연출적 장치는 각 캐릭터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거나 갈망하는지를 감각적으로 전달합니다. 또한 심리적 변화를 표현할 때, 대사 대신 시선의 이동이나 손의 떨림 같은 비언어적 표현을 강조함으로써, 극의 진정성을 더욱 강화합니다.
‘미지의 서울’은 쌍둥이라는 설정을 넘어, 두 명의 전혀 다른 인간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작품입니다. 박보영의 섬세한 연기력과 연출진의 정밀한 심리묘사는 각각의 캐릭터가 단순한 설정을 넘어 실제 살아 있는 인물처럼 느껴지도록 만들며, 이 드라마가 단지 스토리가 아닌 심리적 경험 그 자체가 되도록 합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고스란히 담아낸 ‘미지의 서울’은, 배우와 캐릭터, 연출이 완벽하게 결합된 보기 드문 캐릭터 중심 드라마로 기억될 것입니다.